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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성(亞聖) 안진경

 

 

 

안진경 상

 

 

 

안진경 서예작품

  

안진경(709-784) 한족, 오늘날의산동성(山东省) 린이 냥야(琅琊) 출신이며, 중국 당대 서예가, ‘해서(楷书) 사대가’ 중의 하나이다. 글씨는 남성적인 무게와 강기(剛氣)에 넘쳐 왕희지(王羲之)의 서풍(書風)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의 서체는 “안체 (안진경의 서체)” 라고 불린다. 유공권(柳公权)과 같이 “ 안유”로 불리고“안근유골” ( 颜筋柳骨)로 칭송되었다.

안진경의 소명(小名)은 선문자(羨門子)며, 별호는 응방(應方)이다. 노군개국공(魯郡開國公)에 봉해졌기 때문에 안노공(顔魯公)으로도 불렸고, 안지추(顔之推)의 5대손이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22년(734) 진사에 급제하고, 또 제과(制科)에 발탁되었다. 거듭 승진하여 무부원외랑(武部員外郞)이 되었다. 양국충(楊國忠)의 견제를 받아 평원태수(平原太守)가 되었을 때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을 맞았는데, 형 상산태수(常山太守) 양고경(楊杲卿)과 함께 의병을 거느리고 나가 싸웠다. 20만 명의 의병들이 모이자 형과 함께 맹주로 추대되었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하북초토사(河北招討使)가 되었다. 어사대부(御史大夫)를 거쳐 풍익태수(馮翊太守)에 올랐다. 나중에 중앙에 들어가 헌부상서(憲部尙書)에 임명되었지만, 당시의 권신 노기(盧杞)에게 잘못 보여 좌천되었다.흥원(興元) 원년(784) 덕종(德宗)의 명으로 회서(淮西)의 반장(叛將) 이희열(李希烈)을 설득하러 갔다가 감금당했고, 곧 살해되었다.

 

편집자:辛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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