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시 비림 안의 <대당삼장성교서비>(大唐三藏圣教序碑)는 당고종 함형 3년(서기 672년)에 세우게 되었다. 그 때 조정(朝廷)에서 왕희지의 글자체로 조각하고 싶었다.장안시(현재의 시안시) 한 사묘에서의 고승은 이 중임을 맡아 왕희지의 글자를 찾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글자 찾는 과정에서 몇 개 글자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정에서 남은 글자를 바치는 사람이 천금의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고공문을 붙었다 . 이는 바로 "일자천금"의 유래이다.
편집자:辛颖